이 세상에서 가장 변할 수 없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 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가? 또 그 변화를 관리할 수 있는가? 등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변화 속도는 역사상 전례없이 신속하고 다원적인 변화 양상입니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혼재하고 있습니다, 선후완급이 뒤 바뀌기도 합니다. 위계와 서열이 무너져 내리고 많은 제도와 기관들이 정당한 원 위치를 벗어나 방황하기도 합니다. 변화를 조장하고 관리하며 평가해야 할 지도자들조차도 좌표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A.Toynbee는 “물질문명이 토끼처럼 뛰어 가는데 비해 정신문화는 거북이처럼 기어가고 있다.”고 비유합니다. 1960년대에 국제화시대를 논했는데, 70년대엔 다국적 시대로 부르더니,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구촌화되어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교통과 통신이 체계화되었습니다. 현대에는 무국경 시대가 되었지요. 세상이 온통 재편성되고 있으며 옛날같은 사고방식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현대사회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인구팽창, 공해와 생태계 보존, 상대적 빈곤문제, 전쟁과 핵무기, 편견과 오해, 정보지식 문제, 가치관의 상실, 인간의 기계화와 상품화, 비인간화 등입니다. 농경문화에서 산업사회로, 농어촌 문화에서 도시생활로 전환되면서 역기능적인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사회구성의 최초단계인 가정이 변질되었습니다. 대가족 제도에서 소수가족으로,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부자중심에서 부부중심으로, 수직적 연결고리에서 수평적 개체주의로 변화되면서 독신자와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전근대적 봉건잔재의 하나인 문벌과 지벌은 여전히 각종 선거 때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한국인의 연고주의 버릇입니다. 타락한 행동윤리로써 명분과 형식을 너무 강조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실질이 없는 형식은 허구요,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주장은 무력한 것입니다. GNP 지수나 올림픽의 금메달 숫자가 곧 선진사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의 권력 만능주의, 은 30냥에 스승을 판 유다처럼 화폐제일주의, 어머니의 눈물을 컴퓨터로 측정하려는 과학만능주의,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으로 행복을 찾는 감각적 향락주의가 우리나라 현대인의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이제 우리의 참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무정해진 감수성을 예민하게 다듬어야 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연체동물식 태도에 등뼈를 집어넣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들이 공의를 위해서 헌신하지 않고, 영악한 머리를 써서 잔꾀를 부리고, 우매한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쓴다면 그 지식과 학벌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학력이 곧 실력일 수는 없습니다. 도덕성과 책임감을 결여한 힘은 폭력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같이 변해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는 대로 똑같이 변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