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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저물어 가려는 즈음에 한국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낭랑하고 또렷한 목소리의 의뢰인(도연희, 가명, 여, 35세)은 분하고 힘든 상태에서도 감정 조절을 잘 하는 듯 해 보였다. 수많은 지인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에 사람에 대한 신뢰를 깨트린 사기 피의자(이동진, 가명, 남, 만 35세)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세상은 여전히 믿을 만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듯이 이동진을 꼭 잡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동진(남, 35세)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수재라 할 만한 이력을 가진 친구였다. D외국어 고등학교를 거치고 여전히 한국에서 최고의 명문이라고들 하는 S대학을 나온…
하지만, 수학 능력에 반하여 사회에 대한 이력 과정은 곧은 길을 택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사업에 관련되었고, 필리핀, 마카오 등지에서 도박 관련 일을 하기도 하고 또 도박에 빠지기도 한 모양이었다.
결국 2013년에 학교 동문, 친지들에게서 상당 액수의 돈을 투자금 명목으로 모아 필리핀으로 도주하였는데, 그의 빗나간 행위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한 동안 잠적해 있던 필리핀에서 납치 자작극을 벌여 그를 걱정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다시 상당 액수의 돈을 송금하도록 한다. 납치를 당하여 장기 매매를 당할 위험에 처해 목숨이 위급하다며 스스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증거(?) 사진 등 위태로운 상황을 조작하여 지인들에게 보내었고, 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아주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십 수억 원의 돈을 송금 받았다고 한다. 피해자만도 무려 10여 명이었다.
세상엔 여러 유형의 범죄자들이 있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해 주고 아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그들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동진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작전이기도 했다.
의뢰인인 도연희 등을 비롯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인터폴 등을 통해 이동진 체포를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국가 기관은 그의 체포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진은 그 이후 필리핀, 마카오 등지를 거쳐 태국 치앙마이에 들어와 숨어 지내고 있다는 제보였지만, 그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태국 전화번호 하나였다.
우선, 치앙마이 경찰 쪽에 선을 대어 이동진 휴대폰 위치 추적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태국 경찰의 위치 추적만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돈을 다 탕진하기 전에 잡아 피해자들의 손해를 조금이나마 보충해 주어야 한다.
사무실 태국 여 변호사를 시켜 이동진과 전화통화를 시도해 보도록 하였다.
잘못 걸린 전화로 위장하여 능청스럽게 첫 접촉을 한 연후에, LINE을 통한 SNS접촉을 계속하여 이동진을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유인해 내는 작전이었다.
사기피의자들은 대부분 좋은 머리를 가진 교활한 자들이며, 본인들이 항시 기망행위를 활용하는 자들인지라 그들을 유인해 내기 위해선 그들 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태국 여 변호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약간의 의심도 가지지 않도록, 은근하며 평범한 접촉으로 대화를 유도해 나가도록 주문했다.
이동진과의 LINE 대화는 일주일 이상 단조롭게 지나가는 분위기였다. 매일매일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체크하다, 일주일 정도 지날 즈음에 그를 유인하여 만남을 시도하도록 변호사에게 주문했다. 이동진이 방콕으로 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치앙마이에서 약속을 정해도 어쩔 수 없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하여는 자연스러워야 했고,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선 지루하고 은근하게 그를 유혹해 내어야 했다. 다시 지루하게 며칠이 흘러 갔다.
이동진, 그는 우리가 던진 낚시 밥을 물 것인가. 말 것인가. 머리 속에서 보이지 않는 피의자와 치열한 싸움을 하며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글 : 김철용(법과길 대표 LAW & ROAD Co., Ltd)
“ 법과 길(사건사고, 민형사 소송 및 회사설립 상담)은 한국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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