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푸미폰 국왕 서거 후 1년 만에 다비식을 치른다. 태국정부는"10월25일부터 5일간 공식 장례 기간으로 정하며, 다비식은 26일 거행된다"고 밝혔다.
태국 왕실의 장례 절차는 철저하게 불교와 브라만-힌두교 전통에 따른다. 푸미폰 국왕은 서거 후 처음으로 정화의식을 치렀다. 제단에 양초와 선향을 피운 후 왕의 발에 물을 묻혀서 예를 표하고 머리를 위로 한번, 다시 아래, 위로 한번 빗긴 후 그 빗은 부러뜨리는 데 이 같은 행위는 인간이 죽게 되면 아름다움이나 세속적인 즐거움과 물리적 장식 등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됨을 뜻한다. 사후 최초의 불교식 제례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화의식을 치른 후 푸미폰 국왕의 시신은 현대식 관(棺)에 안치됐지만, '꼿'으로 불리는 황금빛 유골함이 왕의 시신을 대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화 의식을 치른 국왕의 시신은 '꼿'에 안치했다. ‘꼿’은 왕족이나 귀족이 죽은 후 화장 전 까지 시신을 담아놓았던 항아리 모양의 용기이다.
브라만 전통에 따르면 ‘꼿’ 속에 다양한 형태로 시신을 넣어 두었는데 이 중 팔과 다리를 모으고 쪼그리고 앉아서 연꽃을 감싸고 합장하는 자세는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 나오기 전의 모습으로 사후에 천상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꼿’의 전통이 변한 것은 푸미폰 국왕의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였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꼿’에 시신을 담아두는 것이 답답해 보여 자신이 죽은 후에는 관에 넣어달라고 유언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태국 TV에서 조문객들이 ‘꼿’에 참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사실 푸미폰 국왕은 역대 다른 국왕과 달리 ‘꼿’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편에 놓여진 관속에 안치되어 있는 것이다.
조만 간 치러질 다비식으로 1년 만에 푸미폰 국왕의 장례절차는 마무리된다. 다비식은 왕궁과 왕실사원(왓프라깨우) 앞 공원인 '싸남 루엉'에서 거행된다. 이곳에서는 지금 장례식 준비 마무리가 한창이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수미산(須彌山)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건립했으며 그 주변은 나무로 만든 8개의 큰 산이 둘러싸고 있다.
태국에서 왕은 인간과 함께 사는 신(神)으로 여기며 사후에는 수미산으로 돌아가 브라마, 비시누, 시바신과 합류한다고 믿는다. 다비식에서는 승려들의 염불이 울려 퍼지면서 동시에 중앙에 있는 수미산에서 화장을 치르게 되는데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된 의식이 될 것이다.
태국 왕실의 불교식 장례 절차는 정치적 의미가 큰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불교 왕국들에서는 역사적으로 국가권력의 핵심을 이루었던 왕권은 불교의 법(法)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법을 따르는 왕은 정치적 정당성을 갖는 ‘탐마라차’(Dharmaraja)라고 불렀다. 왕은 불교를 후원하고 왕이 지켜야 할 통치의 10가지 덕목을 충실히 따랐으며 불교는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성공한 불교도 왕들은 철저하게 불교적 삶을 살았고 사후에도 불교 다비의식을 치름으로써 왕조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즉위 이래 단기간의 승려 생활을 경험한 후 수많은 불교 행사를 주재하고 공덕 행위를 일상화해 왔으며 태국 정치에서 고질이 돼버린 부정부패 스캔들에 단 한 번도 연루된 적이 없었고 사생활도 유난히 깨끗했다. 이런 엄격한 종교적 윤리성을 바탕으로 한 성실한 생활 자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리민복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1년의 절반 이상 지방을 방문해 국민과 직접 접촉하고 3000개 이상의 국왕개발계획을 추진해 생활수준이 열악한 농촌 지방 삶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했다. 이른바 현대판 ‘탐마라차’로서 모범적인 통치덕목을 실천함으로써 왕권의 정당성을 크게 강화시켰다. 얼마 안 있어서 치러질세기의 다비식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