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관광경제와 위험한 승부수
2021-07-20 태국 방콕무역관 윤장옥
이유현 한태교류센터(KTCC) 대표이사
방콕은 닫고 푸껫은 빗장 푼 태국의 ‘양동책’
지난 7월 1일 오전 10시 20분, 아부다비에서 출발한 은회색의 에티하드(EY430) 여객기 한 대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푸껫 공항에 내렸다. 관광객 25명을 태운 이 항공기는 활주로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물대포 환영 세례를 받으며 입국 게이트로 들어섰다. 태국의 국가 전면봉쇄가 463일 만에 풀리는 장면이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3개월여 뒤인 2020년 3월 26일 태국은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외국관광객의 전면 입국금지를 발표했다. 이후 골프투어, 빌라투어 등 ‘제한적 그룹 형태’로 방문이 일부 허용된 적은 있지만 일반 외국인에 대한 개방은 국가봉쇄 이후 이날이 처음이었다.
개방 첫날 푸껫에 내린 항공기는 모두 4대였다. 주로 싱가포르와 중동에서 총 366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입국했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850km 떨어진 푸껫에 내려간 쁘라윳 총리는 이날 오후 공항에 나가 두 팔 벌려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모습이 곳곳에 보도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태국의 신규 확진자 수는 역대 최다인 6087명을 기록했다. 여러 날에 걸친 교도소발 감염자가 한꺼번에 대거 포함돼 집계된 과거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코로나 발생 이후 최다였다. 사망자도 61명으로 3일 연속 신기록을 이어갔다.
수도 방콕 및 인근주의 확산세는 겉잡을 수 없어 중환자 병상은 바닥났고 의료진은 부족했다. 방콕 및 인근지역은 이미 음식점 내 취식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수백 곳의 건설현장은 록다운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의대 졸업생 150여 명이 7월 1일부터 방콕에 긴급 투입됐다. 이들을 맞은 보건부 차관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병상 부족으로 환자들이 집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푸껫을 통해 외국관광객 개방을 시작한 7월 1일의 모습은 코로나 이후 관광산업과 방역 사이에서 ‘시소타기’를 하고 있는 태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한 장면이다.
관광산업의 후퇴와 ‘그로기’ 상태의 태국 경제
태국은 ‘관광국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태국 관광청(TAT)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총 3979만 명의 외국인이 태국을 찾았다. 프랑스, 스페인, 미국, 중국, 이탈리아, 터키, 멕시코에 이어 세계 8위 수준이었다. 관광산업은 태국 경제의 5분의 1 이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태국의 관광산업이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이후 꾸준히 늘었다. 2016년 20%를 처음으로 넘긴 뒤 2017년 21.3%, 2018년 21.6%에 이어 2019년엔 21.9%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0.6%에서 2016년 11.2%, 2017년 11.8%으로 늘어났고 2018년 11.5%, 2019년엔 11.3%를 기록했다.
태국 관광산업과 GDP
자료: 태국 관광청, 방콕 포스트
코로나가 휩쓴 2020년 태국을 찾은 외국관광객은 약 670만 명이었다. 전년대비 무려 83%나 줄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은 국가봉쇄 이전인 1~3월의 입국자였다. 태국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는 올해 4분기에 입국이 시작되면 2021년 외국인 관광객의 태국 방문은 50만 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태국 방문 외국관광객 수
(단위: 명)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관광객 수(명) | 32,588,303 | 35,381,210 | 38,277,300 | 39,797,406 | 6,702,396 |
자료: 태국 관광청(TAT)
태국 관광산업은 경제의 ‘혈관’과도 같다. 관광산업에서 힘이 빠지자 경제는 바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이미 관광관련 업계에서만 약 200만 명의 실업자가 나왔다. 올해 2분기까지 총 25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LO는 코로나로 인한 태국의 총 실업자가 10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올해 1분기 가계부채는 2003년 이후 최대인 GDP 대비 90.5%까지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각 기관들은 경제성장률을 2-4%에서 1.5~3%로 거듭 축소하느라 바쁠 지경이다.
소비자 신뢰지수도 갈수록 바닥세다. 지난 5월엔 1998년 이후 22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태국 정부는 생활필수품 보조, 감세 등과 함께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이 견인하는 수출 외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중요 경기지표는 도무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태국은 지난해 5월 이후 한 때 신규 확진자 ‘제로’를 기록하며 방역관리에 성공하자 싱가포르, 뉴질랜드, 대만 등과의 ‘트래블버블’을 타진하고 일정지역을 여행하는 ‘빌라투어’ ‘골프격리’ 등을 추진하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타국의 방역 상황이 악화되고 태국도 지난해 12월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2차 유행’이 시작되자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몇차례의 시범 실시 이후 중단되고 말았다.
국내여행 활성화로 방향을 튼 뒤 올 3월까지만 해도 국내여행 보조금 등을 지급하며 활기를 찾는 듯 했으나 4월부터 시작돼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3차유행’으로 이동제한이 실시되면서 ‘사방’의 길이 다 막힌 상태다. 푸껫 개방은 관광산업의 돌파구를 뚫어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120일 내 국가 개방 ‘승부수’
쁘라윳 총리는 푸껫 개방 보름전인 지난 6월 16일 ‘120일 이내 국가 개방’을 전격 선언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외국인은 격리없이 입국하며, 태국인도 해외여행 후 자유롭게 귀가케 한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연말쯤이나 기대됐던 국가 개방이 10월 중순으로 앞당겨지자 경제 예상지표들에도 파란신호가 켜졌다. 상공회의소 등 태국 경제단체는 국가 조기개방이 경제에 0.3% 견인효과가 있고 10~12월까지 500억-1000억 밧의 소비 유발효과 및 경제, 금융 분야 신뢰도 상승을 전망했다.
'3차 유행’이 극성인 가운데 외국인에 대한 조기 국가개방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백신 접종’과 궤를 같이한다. 태국은 국가전면 개방전인 10월 초까지 인구의 70%인 5000만 명을 대상으로 1차 접종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함께 밝혔다. 기술 이전에 의한 아스트라제네카 국내생산 6000만 도스 이상과 연말에 도입될 미국 백신, 중국 백신 수입 등으로 인구수를 훨씬 상회하는 백신을 조기 공급 한다는 ‘노림수’가 있었다.
푸켓의 인기관광지 마야베이
자료: KTCC
‘푸껫 샌드박스’가 진행되며 자신감도 얻은 모양새다. 푸껫은 개방 이전 거주민의 70% 이상 백신 접종을 전제로 했다. 푸껫을 시작으로 코사무이, 코팡안, 코따오 등 푸껫 주변 유명관광지는 7월 15일부터 개방하고 이어 중부 후아힌, 파타야와 북부 치앙마이 등의 인기 관광지들도 차례로 8~9월 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전국 개방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겠다는 복안인데 역시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이 그 바탕을 이룬다.
하지만 현재 태국은 ‘애석하게도’ ‘방역’과 ‘관광산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방콕을 중심으로 확진자 증가세가 그치지 않고 백신 수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에 따라 타지역 개방은 우선 푸껫을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한 발 후퇴했다. 푸껫마저도 1주일 동안 9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면 개방을 취소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불안한 백신공급, ‘3차 유행’의 장기화
현재로선 태국의 ‘10월 중순 개방’엔 먹구름이 드리워 있다. 개방 ‘필수요소’인 백신공급의 불안정성 탓이다. 한국보다 이틀 늦은 2월 28일부터 백신접종을 시작했는데 이후 4개월 동안의 백신접종률은 1, 2차 모두 합해도 인구 7000만 명의 10%대인 1000만 도스에도 못 미쳤다. 믿는 구석이 아스트라제네카의 국내 생산을 담당하는 회사인데 공급물량을 맞추지 못해 쩔쩔매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동남아 유통마저 함께 책임져 7월부터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등에 그동안 미뤄뒀던 공급까지 해야 하는 상황 등이 태국 백신 수급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이유다.
중국 시노백 백신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신뢰도는 매우 낮다. 대안인 화이자 모더나 등의 미국 백신은 아무리 빨라도 10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전망이기 때문에 10월 중순 국가개방까지 국민 70% 접종이 쉽지 않은 이유다. 더욱이 6월 말의 설문조사에서 태국 국민의 73.46%(니다폴 조사)는 10월 국가 개방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태국 신규확진자 추이
자료: Worldometers
그런 가운데 인구 1072만 명인 방콕을 중심으로 한 ‘3차 유행’의 불길은 도무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방콕은 2019년 홍콩(2926만 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2500만 명의 외국인이 방문한 도시로, 국가의 ‘심장 ’인 방콕을 제외한 개방은 무의미하다. 경제 견인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태국 방역당국의 신뢰도도 점수가 낮다. 자신했던 ‘3차 유행’의 5월 말 진화도 일찌감치 빗나갔다.
3월 말 방콕 유흥업소에서 시작된 ‘3차 유행’은 국내여행을 장려한 4월 중순 1주일간의 쏭크란 연휴 뒤 전국으로 확산됐다. 5~6월 신규확진자가 2000~3000명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음식점 및 쇼핑몰 등의 제한조치를 완화한 것도 불길을 더 키운 요인이 됐다. 올해 4~6월의 누적 확진자만 25만여 명.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1년 3개월의 총확진자보다 3개월 동안의 확진자가 무려 10배에 이른다. 의료계의 1주일간의 방콕 전면 록다운 요청에도 태국 방역당국은 건설현장 등을 중심으로한 부분 록다운과 음식점 내 취식 금지 등 만을 유지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푸껫 빗장을 푸는 날 “위험을 무릅쓰고 개방했다. 계획대로 120일 내 국가 개방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태국 여행과 시사점
한국인의 태국 여행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선 해는 14년 전인 2007년이다. 이후 태국 정치 불안과 대홍수 등의 영향으로 주춤했으나 2011년 이후 회복해 9년 연속 100만 명 이상 방문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한 해에는 역대 최다인 189만여 명이 태국을 찾았다. 한국인의 태국 방문 규모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에 이어 4위였다.
2019년 태국 방문 외국인 국가별 순위
(단위: 명)
순위 | 1 | 2 | 3 | 4 | 5 | 6 |
국가 | 중국 | 말레이시아 | 인도 | 한국 | 라오스 | 일본 |
인원 | 10,994,721 | 4,166,868 | 1,995,516 | 1,887,853 | 1,845,375 | 1,806,340 |
자료: 태국 관광청(TAT)
코로나로 외국인의 태국 입국이 막히면서 인적 교류 및 서비스업은 거의 올스톱됐다. 관광업은 황폐화됐고 바이어 발굴도 쉽지 않다. 비대면 방식을 통한 소비재 홍보와 기업 진출 등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태 양국 간의 상호 무비자협정이 중단된 가운데 태국은 ‘독자적으로’ 45일간의 무비자 입국 허용 및 단기, 장기 여행비자를 발행해 주고 있다. 태국 입국은 언제든지 가능한 상태지만 ‘예외 없는’ 14일 의무 격리와 그에 따른 비용, 10만 달러 이상의 보험 가입, 코로나 진단검사 비용 등이 큰 걸림돌이다. 한국에서 타국과의 트래블버블이 논의되고 있지만 7월 현재까지 3차 유행이 한창인 현재의 태국이 포함될 지는 불투명하다.
백신접종 완료자를 대상으로 한 ‘격리없는’ 푸켓 입국도 일반 태국 입국처럼 조건이 까다롭다. 한국-푸켓 간 항공직항편은 운항되지 않고 있으니 한국인으로선 아직까진 이용이 쉽지 않다. 게다가 태국의 입국방침과 각종 제한조치들은 코로나 상황에 따라 여전히 급격히 바뀌고 있다. 태국 입국자와 수출기업들의 꾸준한 관찰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은 국민 70% 이상의 백신 접종으로 내년엔 관광산업을 코로나 이전 수준의 60%까지 회복시킨다는 목표가 있다. 이를 위해 푸껫을 먼저 열었고 10월 중순 전면 개방계획까지 나온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의 불길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띄운 ‘위험한 승부수’가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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